검색

십팔기, 마상무예 그리고 사물놀이

가 -가 +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0-31

▲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정조가 직접 지은 ‘어제무예도보통지서(御製武藝圖譜通志序)’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십팔기(十八技) 교본 《무예도보통지》는 선조 때부터 2백여 년에 걸쳐 조선 왕조가 지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무예서이다. 정조는 십팔기가 만들어진 그간의 과정을 한권의 책으로 소상히 밝혀 놓게 하였는데, 그게 바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종합병장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무예 십팔기가 형성된 역사적인 유래와 사적을 기재하고 있는데 먼저 임진왜란 때 육기(六技)를 담은 《무예제보(武藝諸譜)》와 정조의 생부인 소조(小朝, 사도세자)가 《무예신보(武藝新譜)》를 편찬한 것과 그의 유지(遺志)를 계승하여 십팔기를 더욱 더 발양하며 충직한 군사를 양성하여 국방력의 강화를 도모한다는 등의 찬술 의지와 목적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조는 무예 십팔기가 그 선대 생부인 장헌세자(사도세자) 에 의해 완성된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영조(英祖) 기사년(己巳年, 영조 25년, 1749)에 이르러 소조(小朝)께서 서무(庶務)를 섭정(攝政)하실 때 죽장창 등 12기(十二技)를 더하여 도보(圖譜)를 만들어서 6기(六技)와 함께 통관(通貫)하여 강습(講習)한 일이 있었다. 현륭원(顯隆園)의 뜻으로서 십팔기(十八技)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及至 先朝己巳 小朝攝理庶務以竹長槍等十二技增爲圖譜俾與六技通貫講習事在 顯隆園志而十八技之名始此”
 
“짐은 무의식(武儀式)과 전형(典刑)을 이어가도록 힘쓰고 또 기예(騎藝) 등(等)의 6기(六技)를 다시 더하여 24기(二十四技)로 하였으며, 이미 명을 받고 고거(考据)하여 효습(曉習)한 사람이 2,3인(二三人)이다. 원속(原續)의 도보를 모아 합하여 의(義), 예(例), 전(箋)을 바로 잡아서 묶고, 그 원류를 해석하고 제도를 평가하여서 정하고, 명물로 하여금 예술의 묘용으로서 한 권의 책을 펴내서 그 책의 이름을 관령(管領)으로서 《무예도보통지》라고 하였다. 肆予繩武儀式典刑又以騎藝等六技復增爲二十四技已而命曉習考据者二三人裒合原續圖譜檃括義例箋釋其源流評騭於制度使名物藝術之妙用一展卷管領名其書曰武藝圖譜通志”
 
여기에서 도보(圖譜)가 바로 《무예신보》이며, 6기(六技)는 임진왜란 당시에 《무예제보》에 정리되어 당시 군사훈련에 이용되던 기예를 말한다. ‘현륭원(顯隆園)의 뜻으로서 십팔기(十八技)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한 문장은 우리 무예의 공식적인 명칭이 왕명으로 확정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서 정조 임금이 무예를 한 권의 책으로 통편(通編)하여 정리하는 작업을 열거하고 있다.
 
‘기예(騎藝) 등(等) 육기(六技)’

또 ‘기예(騎藝) 등(等) 6기(六技)’라는 글이 나오는데 기예(騎藝)는 말을 타고 마상(馬上)에서 운용하는 기예(技藝)를 말한다. 그런데 그냥 기예6기(騎藝六技)라고 하지 않고, 등(等)의 글자를 넣어서 표현한 것은 기예(騎藝)는 기창(騎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쌍검(馬上雙劍), 마상편곤(馬上鞭棍)의 4기(四技)이며, 격구(擊毬)와 마상재(馬上才)는 무예가 될 수 없는 군사유희이기 때문에 등(等)이라 하여 부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본래 22가지이며, 이는 《무예신보》에서 이미 정리되었던 것이다. 《무예신보》에서도 22가지를 싣고서도 그 무예의 명칭은 ‘십팔기(十八技)’라 하였으니 말을 타고 마상에서 운용하는 기예(騎藝)는 근본적인 무예, 즉 십팔기(十八技)를 말위에서 응용하는 기예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뒤에 나오는 ‘24기’로 표현한 것 역시 무예의 명칭이 아니라 단순한 기술의 가짓수인 수사(數詞)에 불과한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전서에서 명칭을 의미하는 명(名)의 글자를 넣어서 표현한 것은 서문의 ‘십팔기지명(十八技之名)’과 <병기총서> 영조 35년 조에 ‘본조무예십팔반지명(本朝武藝十八般之名)’으로 확고하게 기재되어 있지만 24기의 표현은 서문 외에도 범례에 한 번 더 나오지만 명(名)의 글자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24목(二十四目)’이라 하여 항목 개수임을 분명히 하였고, 이후 모든 문헌에서는 ‘십팔기’라 했지 ‘이십사기’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어정무예도보통지 자료이미지 
《무예신보(武藝新譜)》와 22기(二十二技)

《무예도보통지》의 정조 서문을 얼핏 잘못 읽으면 사도세자가 18기를 완성하였고 정조가 마상무예인 기예(騎藝) 6기를 만들어 추가한 것으로 오인하여 우리 무예 명칭을 ‘이십사기(二十四技)’라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고의든 아니면 무지에서든 역사를 왜곡하는 중차대한 과실이다. 비록 사도세자 섭정 시에 만들어진 《무예신보》가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지만 《무예도보통지》를 제대로 읽으면 그 안에서 《무예신보》를 구분해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례]에서 구보(舊譜), 즉 《무예제보》와 《무예신보》의 내용은 [原]이라 표기해 두었고,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새로 추가한 내용은 [增]이라 표기하여 명확히 해놓았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에서 [增]을 빼고 [原]의 항목만 따로 모아 묶으면 그게 바로《무예신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기예(騎藝) 4기(四技)는 [原]이라 표기했고, 마상재와 격구는 [增]이라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그만큼 엄밀하게 만든 책이다.
 
이렇게 [原]으로 《무예신보》를 뽑아 살펴보면 이미 사도세자 때에 무예18기와 기예4기, 도합 22기의 보(譜)가 완성되었고, 《무예도보통지》는 여기에 ‘마상재’와 ‘격구’를 부록으로 추가[增]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무예의 명칭은 ‘십팔기’라고 명명했다. 왜냐하면 기예(騎藝)는 모두 독립된 무예가 아니라 십팔기의 응용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을 타고 하든, 소를 타고 하든 낙타나 전차를 타고 한다 해도 모두 ‘십팔기’라 해야 올바른 명칭이다.
 
그리고 《무예도보통지》에 기예(騎藝)가 기창(騎槍), 마상쌍검(馬上雙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편곤(馬上鞭棍) 4가지 밖에 없다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장창, 쌍검, 월도, 편곤 이외에는 말 위에서 시연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4가지 기예(技藝)는 십팔기 전체 무기류 중 대표적인 예를 든 것뿐이다. 따라서 다른 기예(技藝)는 물론 궁시(弓矢)도 말 위에서 얼마든지 사용해도 된다는 말이다.
 
《무예도보통지》 각 종목 목차를 살펴보면 창류(槍類), 도검류(刀劍類), 대도류(大刀類), 곤류(棍類)의 순서로 편집되어 있다. 찌르기(刺), 베기(砍), 때리기(擊)의 무기 순이다. 가령 창류의 경우, 장창, 죽장창, 기창(旗槍), 당파 다음에 기창(騎槍), 그리고 낭선으로 배열되었다. 죽장창과 낭선은 말 위에서 다루기 용이하지 않으나 다른 것들은 모두 기창(騎槍)과 똑같이 말 위에서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역시나 마상에서 월도 대신 협도를 사용해도 전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동류의 비슷한 무기는 마상에서 똑같은 법식으로 운용할 수도 있고, 여타 다른 무기는 그 고유한 법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예(騎藝), 즉 마상무예(馬上武藝)도 4기(四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상당파, 마상본국검, 마상쌍수도 등등 얼마든지 늘일 수 있는 것이다.
 
‘사물놀이’와 ‘마상무예’란 명칭 혹은 용어

오래 전에 필자의 스승이신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은 그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던 남사당놀이를 복원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옛 남사당패 노인들을 찾아내어 이들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로 지정하였다. 오늘날까지 남사당놀이가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그 분의 덕이라 하겠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그 남사당패 노인들의 자녀들 중 김덕수와 다른 세 명의 청년들이 모여 새로운 풍물패를 결성하려는데 마땅한 이름을 하나 지어 주십사고 찾아왔었다.
 
이에 선생께서 “원래 풍물이란 육물(六物: 여섯 개의 악기)이 되어야 하는데, 너희들은 소고와 나팔 없이 네 개의 악기로만 놀겠다고 하니 사물놀이라고 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에 ‘사물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본래부터 내려오던 보통명사가 아니었다. 창작된 고유명사로 그들 놀이패의 이름인 것이다. 예전에는 앉아서 풍물을 치면 ‘앉은반’, 서서 놀면 ‘선반’이라고만 했지 ‘사물놀이’란 말은 따로 없었다고 한다.
 
이후 이 사물놀이는 널리 알려져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예전부터 내려오던 보통명사인양 인식되어 너도나도 그 이름을 가져다 썼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로 ‘사물놀이’가 퍼져나가 아예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정작 이 ‘사물놀이’란 이름의 주인들은 아직 단 한 번도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적이 없다.
 
만약 그들이 사물놀이의 상표권과 저작권을 주장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당연히 사물놀이는 지금처럼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주인들 역시 다른 유사한 여러 명칭의 놀이패 탄생에 피곤해 했을 것이다. 어쩌면 유사상품에 뒤섞여 사람들이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의 여유와 관용 덕분에 사물놀이는 많은 국민들이 누구나가 함께 즐기는 놀이가 되었고, 이를 만든 김덕수와 그들 모두 훌륭한 예인들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근자에 우리 무예계에서 십팔기 중 기예(騎藝), 즉 마상무예(馬上武藝)에 대한 저작권을 두고 처음 복원한 분과 다른 여러 후발 단체들 간에 법적 소송 중이란 소식에 문득 ‘사물놀이’에 얽힌 사연이 떠올랐다. 법적인 해석을 떠나 당사자들 모두 서로 아량과 포용으로 양보하고 타협했으면 싶다. 최초로 복원한 분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함께 손잡아 조상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널리 보급 발전시켜 마상무예가 사물놀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선거(2020.04.02~2020.04.14) 기간 동안에는 모바일에서는 댓글쓰기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무예인 12/04/13 [13:05]
말도 논리도 안되는 주장으로 자기 마음대로 갈겨놓앗네....
18기는 영조 사도세자 때 사용했던용어이고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면서 24반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18기란 용어는 그 이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예도보통지 24기의 모든 기예가 原, 增의 표기를 해놓았다. 그런데 18기예 이외 마상무예, 격구등은 무예가 아니다 ? 말도 안되는 논리로 견강부회하는구나.

그리고 무예신보가 분실된한 18기예가 추측만 할 뿐, 존재가치를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예도보통지의 24기가 명칭의 본류임이 확실하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려도 18기의 대표다 김광석씨는 1970년대 중국의 18기라고 홍보하며 도장까지 운영하고, 협회까지 설립하
무예 20/02/20 [21:12]
復元 복원

부서지거나 없어진 사물(事物)을 원래(原來)의 모습이나 상태(狀態)로 되돌려 놓는 것

再現 재현 2 [재ː현] 

명사  다시 나타남. 또는 다시 나타냄.

명사  심리 [같은 말] 재생1(再生)(7. 이미 경험하거나 학습한 정보를 다시 기억해 내는 일)
참고:무예도보통지24기재현무예=18기재현무예
         24반재현무예=18반재현무예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한국무예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