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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義理)와 배신(背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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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학 총재(세계호신권법연맹)
기사입력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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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학 총재(세계호신권법연맹)     © 한국무예신문
특별한 이해관계가 아니면 의리와 배신이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을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人間)은 ‘희로애락’ 즉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공포감과 불안감, 미움과 사랑, 시기와 질투, 고독과 외로움, 분노(憤怒)와 증오(憎惡)와 같은 감정(感情)에 의해 움직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는 데는 사물로부터 받는 느낌보다 인간관계에서 파생(派生)된 일들에 대한 느낌의 결과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의리(義理)와 배신(背信) 역시 인간관계에서 자신과 상대방의 이해타산(利害打算)에 의해 빚어져 각자가 느끼는 감정의 표출행위라고 말할 수 있기에, 먼저 의리와 배신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本性)을 이해해보지 않을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함께하다가 자신을 떠나버리면, 배신자(背信者)라고 마치 낙인(烙印)이나 찍듯이 비난(非難)하며 매도(罵倒)한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의리와 배신은 일반들이 사용하기보다는 조폭이나 특정한 조직 단체인 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라고 본다. 의리와 배신을 논(論)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쌍방(雙方)이 특별한 관계임을 입증(立證)해야 한다. 상호 이익적인 비즈니스 관계나 직업적인 관계, 단순하고 일반적인 주종 관계가 아닌 바로 보은(報恩)적인 관계나 맹세(盟誓)적인 관계, 동반(同伴)적인 관계 등을 비롯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주어져야 비로소 의리와 배신이라는 단어가 성립된다고 본다.
 
그러나 비록 특별한 이해 관계자가 떠났다고 해서 무조건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 역시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원인제공자가 바로 비난한 자신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가진 동물은 없듯이, 유별나게 이해타산에 밝은 것 또한 인간이다. 어느 일방이 아무리 의리를 찾고 지키고자 하였으나 환경(環境)과 상황(狀況)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변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본성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하긴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고, 미물(微物)도 먹이를 찾아 모여들기 마련인데, 하물며 인간이 이해타산을 쫒아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當然)하다 할 것이다.
    
의리는 양심적인 행위, 배신은 비양심적인 행위
 
그래서 의리는 양심(良心)적인 행위, 배신은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의리는 신뢰(信賴)와 믿음 약속을 지키는 양심적인 행위이고, 배신은 신뢰와 믿음 약속을 어기는 비양심적인 행위를 말한다. 양심은 윤리적인 행위인 반면, 비양심은 이해타산적인 행위다.
 
다시 말해 의리의 행위라 함은, 자신이 상대방과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묵시적(黙示的)이든 아니면 구두(口頭)나 서면(書面)에 의한 것이든 뜻을 함께 하기로 약속(約束)을 맺고 그 약정한 바대로 시작과 끝이 변함없이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고, 배신의 행위라 함은 상대방과 맺은 약정에 대하여 자신의 사정변화에 따라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無關)하게 일방적으로 이를 무시(無視)하고 파기(破棄)하거나 불이행하며 책임과 의무를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의리와 배신행위의 평가기준은 자신이 상대방과 맺은 최초의 어떠한 약정이 쌍방모두 각자의 위치에 걸맞은 공동이익과 발전에 부합함을 전제로 해야 하고, 인간적인 면에서 만큼은 대등한 입장에서 출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리와 배신은 상대성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해타산과 감정, 환경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할 수 있다. 비록 주종관계나 혹은 공생관계라 하더라도 쌍방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때 비로소 의리와 배신의 개념이 성립됨을 말한다.
 
아무리 주종(主從) 관계나 군신(君臣) 관계라 하더라도 다른 한쪽은 지킬 도리나 책임과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은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고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한다면, 그로인해 신뢰는 깨져버리고 마음이 돌아서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라도 양쪽이 상대에 대한 마음 즉 감정만은 대등(對等)한 입장이 되어야 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거나 또는 강압(强壓)과 반의사적 행위로 빚어진 결과를 가지고 의리나 배신을 논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의리는 고난과 손해를 감내해야 하고, 배신은 이익과 발전을 동반 한다
 
‘입성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약속은 쌍방의 합의에 의해 동시에 이행해야할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불행을 멀리하고, 행복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매 앞에는 항우장사 없다’는 말처럼, 모든 여건이 양호할 경우에는 약속을 저버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상황이 돌변(突變)하거나 자신에게 감당치 못할 불이익이 주어지면 이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의리는 양심적인 감정을 지키는 반면, 고통과 손해를 감내할 수 있는 불행적 요소가 있고, 배신은 양심적인 감정을 버리는 반면, 이해타산에 의해 이익과 발전, 행복적인 요소가 동반되어 있음이다.
 
예로써, 중국 초한 시절 ‘한신’과 삼국시절 ‘관우’를 살펴보면, 극명(克明)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먼저 ‘한신’은 초패왕(항우) 밑에서 창을 들고 군막을 지키는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품고 있기에, 기회를 엿보아 공을 세우기 위해 초패왕에게 전략을 간하였으나 하급병사의 제안이라 일거(一擧)에 묵살(黙殺)하고 ‘너 같은 말단병사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 썩 꺼져라’하고 도리어 핀잔만 주었다.
 
이 사실을 안 초패왕의 책사(策士) ‘범증’이 초패왕에게 한신을 살려두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으니 사전에 없애 버리라고 했다. 낌새를 챈 한신은 초패왕의 부하로 있어봐야 잘못 하다간 목숨마저 부지하기 어렵다고 판단, 도망을 가고, 후에 상대진영인 한고조 ‘유방’에게 이적(移籍)해 한나라 최고의 대장군이 되어, 한때 자신의 주군이었던 항우를 때려잡기 위해 전략(戰略)을 구사(驅使)한다. 초패왕 항우는 전투에 패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한신을 보고 ‘나의 사랑하는 부하 한신이여 배신하지 말고 나에게 돌아오면 최고 장군은 물론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도록 해 줄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한신은 단호히 거절(拒絶)하며, ‘진작에 내 전략을 받아들이고, 나를 중용(中庸)했다면, 당신과 함께 큰 뜻을 펼칠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날 무시하고 도리어 역적으로 몰아 죽 일려고 했다. 반면에, 한고조 유방은 자신에게 몸을 의탁(依託)한 나를 믿고 신뢰하며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전 군사를 통솔(統率)하는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는데, 그분을 어떻게 배신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당신과 나는 인연이 아니니 곱게 칼을 받으라고 한 대목이 있다.
 
또 다른 한 예로써, 삼국지연에 나오는 관우는 유비와 장비, 관우가 모여 의기투합(意氣投合)해 ‘도원결의 형제의 연’을 맺고, 조조와 싸우다가 조조 군에 붙잡혔다. 조조가 관우의 기상과 의로움에 반해, 관우를 죽여서 후한을 없애라는 주변 장수들의 간언(諫言)을 뿌리치고 살려줄 뿐 만 아니라 후하게 대하며, 자신의 부하가 되기를 회유(懷柔)하였으나 ‘관우’는 밝은 달밤에 유비의 어려움을 걱정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붙잡혀 있는 자신의 안위보다 먼저 유비의 안위와 그를 돕지 못함을 애석(哀惜)해 하고 마음을 달래며 형제의 의를 지켰다는 대목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두 고사에서 살펴 보건데, 먼저, 한신장군은 비록 초패왕 항우의 부하였지만, 군신간의 특별한 관계를 부여(附與)하지 못했고, 한고조 유방은 도망을 온 한신을 붙잡아 죽이지 않는 반면 최고의 영웅이 될 기회를 만들어 주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초패왕 황우는 한신이 자신의 이해타산(利害打算)에 의해 비록 자신을 버리고 적군에 가서 자신에게 비수(匕首)를 들이대었다고 해도, 단순 군신관계라 배신자라고 비난할 입장도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 반면, 유방과 한신관계는 특별한 관계로 엮어졌기에 만약 한신이 유방을 버리고 떠나거나 다른 적에게 이적을 한다면, 이는 배신과 배반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관우의 대목을 본다면, 관우 역시 유비와 장비와 함께 ‘도원결의(桃園結義)’ 형제의 연을 맺지 않았거나 형제의 정과 걸 맞는 대우를 받지 않고 한신이 초패왕 항우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면, 과연 조조의 회유에 넘어가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이 두 대목에서 시사 되는 바가 크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사는 상대적(相對的)이고, ‘이해타산’에 의해 움직임을 알 수가 있다. 이 두가지 사례(事例)만 보더라도 현재의 사람들이 걸핏하면 말하는 의리와 배신행위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은 조금은 이해가 되리라 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상과 꿈과 현실과 명분’속에서 가치성을 갖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아간다. 끝으로 이 모든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야할 부분이다.
(임성학의 著書 『인생게임에서이겨라』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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