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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장(國家葬)의 품격

요란하기만 한 영결식! 장례 매너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문화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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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5-11-30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2015-11-26 [청와대]    

역사는 기록으로 남긴다? 소통은 언어로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또한 상투적인 고정관념이다. 지금은 이미지의 시대다. 사진 한 장이 그 어떤 기록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꽃 한 송이, 배지 하나의 은유적인 메시지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2012년 4월, 97세를 일기로 사망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영웅 레몽 오브라크 장례식이 남긴 사진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쉿! 집중! 인격(人格) 이외 다른 일체의 물격(物格)들은 삭제되고 없다. 꽃 한 송이조차도 여기서는 방해물일 뿐이다. ‘거두절미’란 이런 데 사용하는 말이겠다. 일대일의 대면! 이보다 더 인간적일 수 없는 연출! 시간마저 정지된 듯한 절대침묵! 혼연일체! 사진을 보는 이들까지 동참하여 이쪽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진정한 소통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다.
 
▲ 진정한 소통과 교감! 레몽 오브라크를 마주하고 조의를 표하는 사르코지 대통령. 사진 품격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AP    

이 사진을 두고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마는, 프랑스 삼색기로 싸인 레몽 오브라크의 관이 아주 간소한 나무 상여에 놓여 드넓은 광장 땅바닥에 고적하니 놓였다. 조문객들과 관 사이는 아주 먼 거리로 떨어져 있고, 프랑스 국민을 대표하여 조의를 표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위치도 멀어 망자의 조국헌신에 대한 경외심이 그 거리만큼이나 크고 높음을 표현해내고 있다. 최고 품격의 이미지를 잡아낸 사진기자의 안목. 흡사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백 마디 말보다, 천 송이 꽃보다 강한 사진 한 장의 메시지
 
혹자는 이를 두고, 그건 그들의 전통적인 관습일 뿐, 우리는 우리대로 하면 되지 굳이 서양을 따라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례식 풍경이 유럽이나 프랑스에서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엄격한 국가의 의전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장례식 이미지는 단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바로 그것이 프랑스의 힘,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화 창조의 역량이다. 왜 프랑스가 글로벌 매너의 중심에 서 있는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한 유가족 및 주요 주문자들의 모습.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민족이 언제나 세계사를 주도해 왔다. 과연 한국에서 저런 식의 과감한 발상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그리고 타성의 질긴 끈을 과감히 끊어내고 새롭고 낯선 그것을 수용할 배짱이 있을까? 아직까지 일제가 가르쳐 준 근조리본, 근조완장, 근조위생마스크도 못 버리면서 문화 창조?
 
개혁이니 진보니 하지만 그게 그렇게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보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버릴 줄 알고, 바꿀 줄 아는 것이다. ‘용(勇)’이 없으면 창조도 없다. 매너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해외선 아무도 조문 안 오는 1조 달러 무역대국의 '우물안' 국가장
 
‘국민장’ ‘국장’을 ‘국가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번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글로벌적 인식도 없이 행정편의적인 발상에서 우물안 개구리 시각으로 만든 개악이라 하겠다.
▲ 크게 써 붙여야 품격이 높아지나? 26일 국회에서 열린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다. 2015.11.26. [연합뉴스]   

‘국가대표선수’라는 용어가 있다. 당연히 국제대회를 염두에 둔 말이다. 국내에서 우리끼리 하는 대회라면 굳이 ‘국가대표’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 정상급 귀빈이 조문오지도 않는 장례식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 하여 맹목적으로 ‘국가장’으로 치른 것은 글로벌적 시각에서 보면 완전 난센스라 하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만델라, 싱가포르 리콴유 같은 인물들이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을까? 매너와 품격이 없으면 명색이 대통령이라 해도 퇴직 후 글로벌 무대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 할 일이 없다는 사실, 현직에 있을 때 만난 그 많은 외국 지도자들 중 조문 올 친구 하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이번 기회에 반성 혹은 고민 좀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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