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밥값을 하는가?

‘모두발언’과 ‘필리버스터’, 그리고 국격

가 -가 +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6-02-29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새삼 자주 듣는 용어가 있다. 바로 ‘모두발언’이다. 한참 생소한 단어여서 사전을 찾아보니 ‘冒頭’라는 한자어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엊그제 여의도에 ‘필리버스터(filibuster)’란 다소 생소한 퍼포먼스가 등장해서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에선 영화의 소재로 이용될 만큼 종종 있는 일. 다만 여의도 필리버스터는 감동 대신 짜증만 나는 것이 다른 점이겠다. 암튼 이런 식으로라도 선진국회가 될 수 있다면야!
 
지난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모두발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의‘필리버스터’를 강력 비판하며 주먹을 쥐고 역정을 내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자다가도 통탄할 일”이라거나 “어떤 나라에도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라며 분노에 차 책상 10여 차례 내리치는가하면, 흥분을 못 가라앉혀 10초간 발언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다. 국민경제를 자문하기 위해 불려간 위원들이 난데없는 호통에 꽤나 당황했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겨우 서너 번의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거의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거나 호소하는 경향이어서 진정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가령 회견이 끝난 후 질문을 제대로 받지 않는 것이 그 방증이 되겠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 ‘아홉시 땡!’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저녁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대통령의 소식부터 전하기 때문에 나온 비아냥이었다. 한데 이번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모두발언’에 익숙해졌다. 국민들이 듣는 그 분 말씀의 대부분이 이 ‘모두말씀’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6-02-22 [청와대]

소통 없는 원칙 고수는 독단, 독선, 독재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관하는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 때마다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데, 엄밀하게 말해서 이는 정상적인 정책결정방식도, 그것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도 아니다.
 
먼저,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실은 회의 내용이 아니라 모두발언을 통한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사항)이 마치 확정된 정책인양 바깥으로 공개되는 것도 이치적으로 맞지 않다. 심하게 따지자면 초법적인 사안이다. 아무리 ‘수석’자를 붙인다 해도 비서는 비서일 뿐, 그 비서관회의는 어떤 이유로도 공식적인 행정 절차가 될 순 없는 일이다.
 
모든 정책의 결정은 국무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한데 박근혜 정권에서는 국무회의보다 수석비서관회의가 더 힘이 실리고 있어 어느 쪽이 내각이고 외각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수석비서관이란 기실 대통령의 개인적인 보좌관들이다. 그 회의의 모습이나 내용 또한 공개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이 그런 미주알고주알까지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다.
 
다음, 어떤 회의든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그냥 의례적인 개회사여야 한다. 헌데 회의를 시작도 하기 전에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회의의 주제와 결론은 물론 심지어 그 회의와 상관없는 민감한 외교적 의중까지 다 쏟아낸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치적으로 따지자면 모두발언 대신 회의를 다 마친 다음 그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정상이다. 결국 대통령 말씀 받아 적고 추인하기 위한,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는 셈이다. 하여 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소릴 듣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직접 혼자서 국민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 기타 각종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대상이 누구인지 애매한 상태로 흘리듯 내뱉는 것은 절차상에도 문제가 있고, 국민을 대하는 태도로서도 무례하다 할 수 있다.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을 통해 정식으로 발표하거나, 직접 나설 사안이 아니면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 것이 절차상에도 맞고 격에도 맞다. 대변인은 둬서 어디에 쓰려는지 모르겠다.
 
말 많은 지도자보다 경청하는 지도자여야
 
문민정부 이래 이 나라 최고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최고로 똑똑해서 뽑힌 줄 착각하고 있다. 해서 도통 아랫사람은 물론 다른 어떤 사람의 말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시하면 아랫사람은 무조건 실천해야 하는 줄 안다. 그게 잘되면 소통이 잘되는 거라고 착각한다. 대통령이 회의를 소집하는 목적은 전문가(국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닌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성균관대학 6백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 4백년 이상 된 유수한 대학의 총장들이 방한했었다. 행사 후 청와대 초청으로 한 시간 동안 대통령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대통령이 혼자서 50여 분간 장광설을 하는 바람에 모두들 꼼짝없이 앉아 강의만 듣고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경청할 줄 모르는 못된 매너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마주한 더없이 좋은 기회에 그분들의 얘기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앞에서 제 자랑인지 강의인지 훈계인지를 혼자서 떠벌렸으니 그런 난센스도 다시없었다고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모두발언에서 주먹을 쥐고 국회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2016-02-24 [청와대]   

봉건적 방식으론 소통 불가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난 이후 박대통령의 냉정을 잃은 듯한 발언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공들여 온 중국과의 관계도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렸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이나 의중을 함부로 드러내서도 안 된다. 그게 공인의 자세다. 책상을 치며 국민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토로)하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선 먼저 움직이는 자가 불리하다. 화를 낸다는 것은 게임이나 협상에서 이미 졌다는 뜻이다. 상대가 바라던 바다. 더 이상 써먹을 패가 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인 소치다. 기실 중국을 상대하려면 중국인보다 더 능글능글해져야 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한 고수는 천하의 그 어떤 고수나 하수를 상대해서도 만합을 사양치 않는다. 호통으로 사람을 부리는 주인은 아직 하수다.
 
입술이 터져나가는 장관과 당대표들, 필리버스터로 득음(得音)하려 줄을 서는 선량들, 거품 물고 책상 내리치는 대통령…. 얼핏 생각하면 나름 열심을 부리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동정이 가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만한 직분을 감당하기엔 체력이나 능력이 부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진정성과 능력은 별개
 
제 손으로 뽑은 지도자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국민은 없다. 그러니 굳이 그걸 증명하려 용을 쓸 필요가 없다. 국민들이 바라는 리더십은 원칙(소신) 고수와 솔직함이 아니라 유연함과 냉철함이다. 부지런함이 아니라 순발력이다. 호통이 아니라 설득이다. 감정이 아니라 감동이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내는 솔루션이다. 신뢰는 그렇게 쌓아가는 것이다.
 
필리버스터? 기록갱신? 지혜가 모자라면 몸이 고달픈 법. 고작 그 정도의 내공으로 곧 밀어닥칠 쓰나미를 어찌 타고 넘을 수 있을지? 요즘 들어 ‘세월호’ 침몰이 국가존망의 징조였던 것 같다는 불길한 소문까지 나돈다. ‘한국호’가 기울어가는 데도 속수무책!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
 
조선은 그 잘난 선비들의 상투잡이로 망했다. 그리 머지않은 훗날, 지금 이 시기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혹여 대한민국은 멱살잡이로 망했다 하지 않을까? 상투를 잡든 멱살을 잡든 제발 이마를 맞대고 결판을 내주길 바란다. 이기든 지든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선거(2020.04.02~2020.04.14) 기간 동안에는 모바일에서는 댓글쓰기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무예리 16/02/29 [09:51]
안그래도 박대통령이 야당의 필리버스트에 대한 한심함을 울분을 토하고 있는데 야당의 잘못됨을 질타를 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을 비방하는 태도가. 그 발상이 더 문제가 아닌가 해서 너무 아쉽다....
임사범 16/02/29 [15:07]
무예신문...?   맞는가?
호야 16/03/01 [09:33]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 공무원일뿐.. 여전히 이나라는 왕정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
전교수 16/03/01 [09:35]
매번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품격경영도 정독완독 했고요.고맙습니다.
임병호 16/03/03 [00:51]
답답하고....답이 없다.
Lee SangHak 16/03/03 [11:16]
밥값 하는 자 있나요. 다 도적일 뿐
천성진 16/03/04 [01:47]
역사의 교훈을 얻지못하면내가지금 어디에 어떤처지에있는지 알지못하는것..한국역사의 흐름을 유턴시킨자로말미암아 지금 한국은역류의길을 가고있다~반복된흐름인것...해서 지금시점은 조선의 끝자락을향해가고있다 할것이다~조선의 종말이 현재 정치현상과닮은점을 기억하라~머지않아 대한민국이란 간판이내려질것이다..지금 민주란  가면을쓴정치권력자 들이 있는한이나라는 거북이 중국에게모든주권을 내어주고자만적 잠에서 깨어난들불쌍한 패배의 토끼가될것이다~이것이 반복되는 역사의 이치다..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한국무예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