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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묵가오류(墨家誤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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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9-29

▲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묵가는 유가와 함께 현학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제자들이 천하에 가득했다. 그러나 묵자의 정치적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정치적 이상은 당시 신흥지주계급이 주도한 경제와 정치구조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법철학비판에서 한 나라에서 이론의 실현 정도는 그 나라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 것처럼 그의 정치사상은 지주계급의 정치적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묵자는 소생산노동자의 물질적 이익과 사상을 기반으로 겸애론을 제시했다.
 
비공은 전국시대 각국의 통치자들이 채택할 수 없는 정치적 주장이었다. 게다가 그는 소생산노동자들의 소망인 경제적, 정치적 모순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격화된 모순은 전쟁으로 해결했다.

전국시대의 현실적 수요는 전쟁에 필수적인 부국강병을 위한 구체적인 시책이었다. 묵자의 비공은 정쟁의 발생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는 공리공담으로 마무리됐다.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은 세계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치열하고 빈번했다. 춘추시대에만 시해된 군주가 36명, 망한 나라가 52개국이었으며, 사직을 버리고 도망친 제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은 무기와 기계의 발달을 촉진했다. 그러나 당시 전쟁 수준은 기계가 승부를 결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승부는 병력의 수와 그들에게 보급할 식량으로 결정됐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의 전쟁을 경전(耕戰) 즉 식량전쟁이라고 부른다. 예악은 타락했지만, 경전은 발전했다. 전쟁이 길어지자 유능한 정치가와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늘었다. 이들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진정으로 치국안방을 쟁취한 군주는 정치가와 군인을 필수적인 수단으로 생각했다. 구체적 부국강병책을 시행한 국가가 전쟁에서 이겼다.

이상주의였던 유가와 묵가는 현학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다급한 부국강병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실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공자는 식량과 병력이 풍족하면 백성들이 군주를 믿는다고 했지만, 신뢰를 식량과 병력보다 더 중시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바로 설 수가 없다고 했다.
 
묵자는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전쟁이 물질적 기반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력과 식량이 국가존망을 결정한다는 문제를 고민하기보다 국가의 부가 넘치면 그 여력을 이용해 침략전쟁을 펼칠까봐 걱정했다.

관자에서는 현실적 입장에서 나는 남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남이 나를 공격하지 않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묵자를 비판했다. 국방을 소홀히 하면 나라가 망할 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자국이 평화주의를 고수한다고 타국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인류사상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팽팽한 세력균형을 기반으로 하는 협상이다. 둘째는 대규모의 무력충돌 이후 서로 공격할 힘을 잃었을 경우이다. 묵가의 협기는 감동적이었지만, 작용의 범위가 너무 좁았기 때문에 지속되지 못했다.

또 유협의 범법행위를 제재할 수도 없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유협의 도는 개인적인 신의에 불과했다. 통치계급의 입장에서 유협은 국가의 법령을 어기는 혼란의 원인이었다. 유협은 약소국에서 유용했지만 강대국을 상대하는 전쟁에서는 크게 작용하지 못했다. 약소국은 유협을 이용해 모략이나 암살과 같은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당랑지부에 불과했다.
 
테러만으로는 대국을 전환시키지는 못한다. 정치, 경제, 국방에 관한 근본적인 개혁이 없이는 역사의 진행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유협만으로는 통일된 통치권을 수립할 수 없었다. 진시황이 분서를 하고 처사 출신을 관리로 등용하여 그들을 스승으로 섬기자 유가와 묵가는 모두 미미한 존재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평화주의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이상이야말로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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