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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오기일패(吳起一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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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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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전국시대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군사전문가였던 오기는 지금의 산동성 조현(曹縣) 출신이다. 손무(孫武), 손빈(孫臏)과 함께 삼대병법가로 명성을 날린 그는 공명심이 높고 의심이 많으며 잔인했다.
 
그는 지나친 공명심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 여생을 아름답게 마친 손무와 달리 천명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오기가 처음 명성을 얻었던 곳은 노(魯)였다. 당시 제가 노를 침공하자 오기는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싸우고 싶었다.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로 노의 군주가 의심을 하자, 오기는 군주의 의심을 풀기 위해 아내와 자식까지 죽이고 장군이 되어 제군을 격파했다. 오기의 명성이 높아지자 당연히 그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기를 질투하는 사람들은 군주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오기는 의심이 많고 잔인합니다. 어려서 집안이 부유했지만 일을 하지 않아 망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비웃자 30여명을 죽이고 도망쳤습니다. 그의 모친은 오기가 출세하지 않으면 내가 죽더라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마저 지독한 출세욕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증자를 모셨습니다. 과연 얼마 후 모친이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증자는 오기가 야박하다고 생각해 관계를 끊었습니다. 오기는 노에서 병법을 배워 군주를 섬겼습니다. 군주께서 의심하자 처자를 죽이고 장군이 됐습니다. 소국인 노가 대국인 제를 이겼으니 위협을 느낀 제후들이 노를 칠 것입니다.”
 
귀가 얇았던 노의 군주는 오기를 파면했다. 오기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그는 용병술에 능했고, 청렴하고 공평해 군사들의 마음을 얻었다. 장군으로서 졸병들과 동고동락했으며, 침구도 깔지 않고 잠을 잤다. 행군할 때는 말도 타지 않았다. 야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노의 군주가 조금만 진중했다면 오기의 억울함을 알았을 것이다. 오기는 위(魏)로 도망쳐 역사상 좋은 평가를 받은 문후를 찾아갔다. 문후의 측근들은 오기가 용병은 뛰어나지만 탐욕스럽고 여색을 밝힌다고 평가했다.
 
문후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받아들여 오기를 장군으로 삼았다.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운 그는 서하수(西河守)가 됐다. 성공하자 오기의 타고난 단점인 공명심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문후가 죽고 무후(武侯)가 즉위했다. 오기는 승진을 기대했지만 전문(田文)에게 밀렸다. 화가 난 오기가 전문에게 따졌다.
 
“목숨을 걸고 싸워 적을 꺾는 능력이 나보다 뛰어납니까?” “제가 못하지요.” “백관을 다스리고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며 창고를 채우는 능력이 나보다 뛰어납니까?” “제가 못합니다.” “서하를 지키면서 진의 군사가 감히 동쪽을 넘보지 못하게 하고, 한과 조를 따르게 하는 것에서 그대가 나보다 공로가 많습니까?” “아닙니다.” “이 3가지에서 그대는 나보다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나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했으니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전문은 천천히 대답했다.
 
“주군께서 작은 나라를 의심하고 대신들은 그에 따르지 못하며 백성들은 믿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된 것이 그대 때문입니까? 저 때문입니까?”
 
허를 찔린 오기는 조용히 생각을 하다가 할 수 없이 인정했다.
 
“저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가 그대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원인입니다.”
 
공을 다툴 때 오기는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것이 밉상을 받게 된 원인이었다. 타산에 밝은 재상 전문은 오기와 공을 다투지 않았다. 그는 전쟁에 능한 오기와의 공존을 중시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문은 일찍 죽고 말았다. 천하의 오기도 한 풀 꺾인 셈이다. 지지자를 잃은 오기는 다시 도망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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