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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어부지리(漁父之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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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1-08

▲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대부분 만주족의 청이 한족의 명을 멸망시켰다고 생각하지만, 명의 숨통은 농민반란을 주도한 이자성(李自成)이 끊었다.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하자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는 매산(煤山)으로 올라가 자살했다. 시원찮은 황제였지만 반란군에게 치욕은 당하지는 않았다. 훗날 청왕조에 반항하던 한족은 그의 죽음을 대단한 것으로 묘사했다.
 
이자성은 국호를 순(順)로 정하고 칭제했다. 훗날 중국공산당은 이자성을 위대한 농민혁명가로 받들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북경 곳곳에 있던 대신들의 저택에 불을 지르고 창고에서 진귀한 보물들을 약탈했다.
 
후금은 홍타이지(皇太極)가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원을 노렸다. 명은 원숭환(袁崇煥)에게 동북의 군사를 맡겼다. 원숭환은 수비에 치중하면서 누르하치가 죽었을 때 조문하기도 했다. 1627년 홍타이지는 요령성 일대를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다. 홍타이지가 전력을 다해 중원을 공격하지 못한 원인은 요동의 영원(寧遠)과 금주 일대에 포진한 명군과 조선 때문이었다.
 
송산(松山)을 지키던 홍승주는 1642년 청군의 포로가 됐고 그가 이끌던 명군의 주력 13만명이 궤멸됐다. 잇달아 조대수도 청군에 항복했다. 남은 병력은 영원에 주둔하던 오삼계뿐이었다.
 
1644년, 홍타이지가 죽고 어린 아들 푸린(福臨)이 즉위했다. 그가 순치제(順治帝)이다. 숙부 도르곤이 섭정했다.
 
이자성이 섬서에서 동진해 북경을 압박하자 태감 조화순(曹化淳)이 성문을 열어주었다. 이자성이 북경을 압박할 때 숭정제는 오삼계를 급히 불렀다. 그러나 오삼계는 북경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산해관을 지키며 사태를 관망했다.
 
이자성은 오삼계의 애첩 진원(陳沅)과 아버지 오양(吳驤)을 인질로 잡고 항복을 권유했다. 아버지의 투옥 소식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오삼계는 이자성이 애첩을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노했다고 한다.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그는 청군에 투항했다. 7세에 불과했던 순치제는 모든 일을 섭정왕 도르곤에게 맡겼다. 도르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오삼계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러나 강적에게 옹졸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명과 청은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청의 내부에 분제가 발생했을 때 명에서 군사를 일으켜 도움을 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명은 도적에게 군왕과 수도를 잃었습니다. 이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습니다. 우의를 생각하여 힘을 보태주십시오.”
 
내심으로 미칠 듯이 기뻤지만 그는 난색을 표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오삼계가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애원했지만 도르곤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정도의 논의가 반 달 정도 계속되는 동안 도르곤은 입으로는 출병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몰래 병마와 군사들을 정비하며 작전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준비를 마친 도르곤은 오삼계를 불러서 갑자기 내린 결정인 것처럼 출병하겠다고 통보했다. 오삼계는 즉시 돌아와 병마를 수습하고 청군과 합세해 기세등등하게 산해관을 통과해 중원을 향해 진격했다. 행군 도중에 청군이 농민군을 대파했다.
 
이자성은 황급히 명의 태자를 끼고 서쪽으로 도주했다. 도르곤은 즉시 오삼계를 평서왕(平西王)으로 봉했다. 1644년 5월에 청병이 유유히 북경으로 들어왔다. 6월에는 순치제가 산해관으로 들어와 북경을 도성으로 정했다. 이로써 중원은 청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말았다.
 
청은 이자성을 끝까지 추격했다. 이자성의 군대는 무창(武昌)에 이르렀을 때까지 50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군의 압박이 계속되자 결국 이자성은 지금의 호북성 통성현(通城縣)에 있는 구궁산(九宮山)에서 시골사람들에게 피살됐다. 도르곤은 명장 사가법(史可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틈적으로부터 연경을 차지했지 명왕조로부터 빼앗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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