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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진송예찬(秦松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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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2-18

▲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청대의 문학가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은 태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동성 치천(淄川) 출신으로 자를 유선(留仙) 또는 검신(劍臣), 호를 유천거사(柳泉居士)라 했다. 사람들은 그를 요재선생(聊齋先生)이라 불렀다.
 
19세에 현(縣), 부(府), 도(道)에서 실시한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했다. 유명한 시인인 시험관 시윤장(施閏章)은 그의 문장을 공중에서 나는 향기와 같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30세에 동향인 손혜(孫蕙)의 막료가 되어 강소성 보응현(寶應縣)에서 서기 노릇을 한 것 외에 71세까지 정식으로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강남에서의 경험은 나중에 요재지이(聊齋志異)를 지을 때 소중한 자료가 됐다.
 
귀향한 후 줄기차게 응시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다가 말년에 간신히 공생(貢生)이 됐다. 그동안 그의 세 아들과 장손이 먼저 수재(秀才)가 됐다. 포송령은 서당을 열고 훈장 노릇을 하면서 단편소설집 요재지이를 완성했다. 그는 당대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을 모방해 여우나 귀신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이 작품집을 통해 당시 사회와 정치적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태산을 찾은 포송령은 진송부(秦松賦)를 지어 심금을 울렸다. 전문을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고 대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태산의 정상과 절반 정도 되는 곳에 5그루의 고송이 있다. 가지가 길가까지 늘어졌다.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굽은 노인과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 서 있었을까?
 
이 소나무를 진시황이 오대부로 봉했다고 하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뿌리가 땅바닥을 뚫고 나와 바위를 휘감았다. 세월의 풍상을 견딘 솔잎은 억세고 날카로운 바늘과 같다. 산석처럼 고풍스럽고, 짙은 색깔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봄이면 태산의 녹수가 사람들을 유혹하고, 붉은 꽃이 만발한 곳에 앵무새가 나니 누가 이 아름다움과 다툴 수 있으랴? 그러나 진송은 이런 아름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다. 겨울에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면, 온갖 아름다운 색채가 사라진다. 그러나 기쁨도 슬픔도 없이 홀로 푸르기만 하다. 밤이 되면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마음을 흔들고, 낮에는 안개와 비가 처량해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가야할 때도 잊어버린다.
 
먼 옛날을 생각해본다. 진시황이 태산에서 봉선제를 올릴 때는 수많은 인마와 기치창검을 앞세웠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를 만나자 이 5그루의 소나무 밑에서 비바람을 피했다고 한다. 그 고마움 때문에 관작을 하사했다니 소나무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셈이다.
 
지금 진시황은 사라지고, 여러 왕조가 교체됐다. 역대 제왕들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향내음도 나지 않는다. 오대부송만 아직도 남아 당년의 기골을 과시하며 푸른빛을 자랑한다. 나는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진시황이 당신을 봉한 것이 영광인지 치욕인지 물었다. 오랫동안 나무 밑에서 서성이던 나는 잠이 들고 말았다. 꿈속에 당당한 사나이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소라고 부르면 나는 소가 될 것이요, 말이라고 부르면 말이 될 것이오. 진왕이 나를 대부로 봉했지만, 나는 진의 대부였던 적이 없었소. 진시황이 어떤 군왕이라고 나를 그의 신하로 봉할 수가 있겠소?”
 
산바람이 불어와 문득 깨어나 소나무와 작별하고 떠났다. 그 소나무를 보러 4월에 벗들과 태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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